【고양인터넷신문】고양시 대변인이 전날(20일) 시의회에서 의결한 본예산(2023년도 예산안)을 두고 ‘몰염치, 막장, 집행부 발목잡기·길들이기’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들먹이며 강력 반발한 가운데, 고양시장이 긴급기자회견과 함께 ‘재의요구권’ 카드를 검토하고 있어 시의회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재의요구권(再議要求權)은 지자체장이 지방의회의 의결에 대하여 이의가 있어 수리를 거부, 이를 의회에 반송하고 다르게 의결을 요구하는 일종의 거부권에 가깝다. 국가 예산은 국회에서의 심의·의결로 예산이 확정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은 다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의회의 의결이 월권 또는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치는 경우 △예산상 집행할 수 없는 경비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할 경비나 비상재해로 인한 시설의 응급 복구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줄여 의결을 할 때 지자체장은 그 의결사항을 이송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이 재의를 요구할 경우, 시의회에서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전과 동일한 의결을 확정할 수 있다. 만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안건(2023년도 예산안)은 자동 폐기되어 고양시는 또 다시 준예산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반면에 조건을 충족하면 이동환 시장의 독단·불통 행정이 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자충수’에 빠지게 된다. 이때 시장은 시의회의 재의결(3분의 2 이상 찬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하면 대법원에 소(訴)를 제기(재의결된 날부터 20일 이내)할 수 있는데, 이때는 시의회와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상의 재의요구권 조건들을 볼 때 시의회가 여야 동수(17:17)인 상황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다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경우 시청사 백석동 이전 발표로 덕양구 시의원(특히 고양갑 지역구)의 반발과 함께 일산동구(고양병) 지역구에서도 일부 이탈표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장의 재의권 발동으로 3분의 2이상 찬성 조건에 미달해 ‘2023년도 예산안’이 자동 폐기되어 다시 준예산 체제로 접어들 경우, 시장은 다시 본예산 안(案)을 의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예산안 수정 없이 처음의 원안을 제출한다면 ‘의회 무시’라는 이유로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야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수정 예산안을 제출하기도 어려울 것(그럴 것이면 재의권을 발동하지 않았기에)이다. 더군다나 재의권에 따른 준예산 사태 초래의 책임도 시장이 져야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환 시장이 재의요구권을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시의회 본예산 삭감에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변인 보도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설 연휴 첫날인 21일 오전 대변인은 ‘몰염치 시의회에 손발 묶인 고양특례시’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0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2023년도 본예산은 시의회가 온갖 억지와 꼼수를 동원한 ‘막장’ 예산심사나 다름없다”며 “시의회가 민선8기 역점사업 및 업무추진비를 삭감하는 등 고양시의 손발을 묶어버리면서 (고양시장의)시민을 위한 행정은 올해 한 해 동안 마비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어서 시의회는 지난해 2023년도 예산을 의결하지 않아 법정 처리기한을 넘겼고, 지난 6일 제270회 임시회를 개의해 뒤늦은 예산안 심사에 돌입했지만 당초 시가 요구했던 예산은 상임위와 예결위 심사를 거치면서 대폭 삭감됐기에, 예결위 의결을 앞두고 민주당 측이 증액 요구한 주민자치회 운영지원비 등 18건 중 일부를 수용하는 대신 삭감예산 중 공약 이행과 민생에 직결되는 일부 사업을 반영하는 쪽으로 시의회와 논의를 시도했으나 민주당 측에서는 이를 전면 거부하고 수적 우위를 앞세워 역점사업 및 업무추진비 예산 대부분을 삭감했다고 밝혔다.
예결위 조정안에 110억 원 가량 삭감됐고, 이중 ▲건강취약계층 미세먼지 방진창 설치(9억 원) ▲고양도시기본계획 재수립 용역(4억 원) ▲청년 느린학습자 기술교육 운영(0.3억 원) ▲지표투과레이더 탐사를 통한 공동(空洞) 조사(2억 원) ▲시 경계 지적이용 현황조사 및 지적현황측량(0.3억 원) ▲킨텍스 일원 지하공간 복합개발 기본구상용역(2.7억 원) ▲고양시민복지재단 설립 경기도 사전협의안 수립 용역(0.2억 원) ▲한옥마을조성 타당성 조사 용역(1억 원) 등 민선8기 핵심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또 이동환 시장의 공약 중 하나인 건강취약계층 미세먼지 방진창 설치의 경우 어린이집, 경로당 등 1,073개소에 대해 3년간 순차적으로 방충망을 방진창으로 교체하는 사업이지만 이번 예산삭감으로 사업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이 밖에도 ▲시 경계 조정을 통한 은평 자원순환센터 문제 해결 ▲박물관, 한옥마을 등 세계적 수준의 관광자원 조성 ▲복지재단을 통한 합리적 복지 서비스 고도화 등 평소 이 시장이 예산반영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사업들이 대부분 삭감됐다.
이와 관련해 “새로 선출된 시장이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고, 이에 맞게 재원을 배분하는 것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에 뒤따르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며 “전 정권에서 추진해 온 예산을 모두 반영해 달라는 것은 선거제도의 취지를 흔들고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로 의회의 심의·의결 권한을 그저 집행부 길들이기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시의회는 당초 삭감으로 1,700여만 원이었던 의장단 업무추진비는 1억7,000만 원으로, 전액 감액됐던 국외 연수 출장비 등은 3억2,000여만 원으로 증액돼 통과시켰다”며 “시민을 위하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 온 시의회가 몰염치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고 시의회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특히 시의회 예결위가 전체 삭감한 예산 308건 중 208건(67.5%)이 업무추진비인 것과 관련 “시의회의 이러한 결정은 집행부의 사업추진 의지를 꺾고 의회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예산안 심사가 시민의 공공복리 증진을 위함이 아닌 단지 시 직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성토하면서 “그로 인한 피해가 오롯이 시민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해 ‘재의요구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동환 시장이 설 연휴 다음날인 25일 오전 시청 문예회관에서 시의회의 본예산 확정과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는데, 대변인 보도자료 발표에 곧 이어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한 것으로 보아 예산 삭감의 부당함과 함께 재의요구권 발동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의권으로 인해 또 다시 준예산 체제로 접어든다면 교육 현장 인건비, 복지급여·수당 등 민생예산을 지급할 수 없어 가뜩이나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에 이번 본예산 삭감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는 시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추경안을 하루 빨리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또한 대변인 보도자료에서 “새로 선출된 시장이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고 재원을 배분하는 것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에 뒤따르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밝히며 12년 만에 이뤄진 고양시 정권교체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고양시의회 역시 시민의 대의기관으로 고양시장의 독주를 견제하라고 여야 동수(同數)의 시의원을 뽑은 고양시민의 선택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25일 예정된 이동환 시장의 기자회견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적 사고로 ‘시민만 바라보는’ 발언이 아닌 ‘시민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